물건에 질식하다

2023년 06월 28일

영어 공부를 하다가 재밌는 표현을 발견했다.

Stuffocation

'stuff'(물건)와 'suffocation'(질식)의 합성어로 과도한 소유가 결국 사람과 사회의 명을 재촉한다는 것을 뜻한다.

잘 살아가는 데 물건은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무신사의 여름 세일, 무진장 캠페인이 한창이다. 판매 건수가 200만, 액수는 800억이 넘어간다. 실시간으로 숫자가 올라간다. 나도 이참에 뭔가 살 게 있나 둘러보러 들어갔다가 다시 생각했다. 내가 사려는 물건이 정말 나한테 필요한가? 소비는 중독적이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돈 쓰는 기분’이 좋아서 물건을 살 때도 많다.

(그래서 무소유로 살자는 것은 아니며, 저도 무신사랑합니다)

좋은 물건 사서 오래 잘 쓰는 건 미덕이다. 여기서 방점은 ‘좋은 물건’이 아니라 ‘오래 잘 쓰는 것’에 있다. 에코백이 기업의 윤리적 굿즈로 소비 되고 잘 나간 때가 있었다. 다른 예쁜 쓰레기보다 에코백은 그나마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덜 했다. 그런데 싱가포르대에서 한 연구 결과를 냈고, 배신에 가까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에코백이 비닐봉지보다 지구에 치명적”이라니? 에코백이 재사용 비닐봉지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칠 영향이 80배 크다. 에코백이 에코 할 경우는 ‘많이 잘 쓸 경우’에만 해당한다. 정확히 숫자로 나타내보자면, 에코백은 131번은 들어야 에코해진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이 맡은 역할이 제주도 만물상 트럭 주인이었다. 물건을 가득 실은 파란 트럭이 지나가면서 방송 한다. ‘윗도리, 아랫도리’, ‘공구 일체’. 지역에 필요한 물건들을 들고 찾아가는 만물상이다. 방송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 저 방송이 말하자면 ‘마케팅 문구’인데 호객 멘트가 저정도여도 되는 것인가? 옷 사러 오라고 꼬시는데 윗도리 아랫도리라니.. ‘하객룩’, ’30대 초반’, ’계절감’.. 뭐 이런 태그가 잔뜩 붙어있던 쇼핑몰 상세 페이지가 떠오르면서. 아니, 윗도리, 아랫도리란 설명으로 충분한가? 좀 웃겼다.

‘더 사라, 더 사라’ 하는 메시지는 얼마나 많은가. 돈 쓰며 잠깐 기분 좋아지는 건 너무 쉽다. 결제도 원 클릭, 얼굴만 갖다대면 바로 된다. 서비스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건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수도 깔아서 물 틀듯 수도꼭지 돌리는 정도 편리함으로 ‘쓰게 할 것인가’이다. 편리한 건 좋다. 그런데 어디까지 편리한 게 적당한가? ‘타자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나니 몇 번 검색하고 나면 ‘타자기’ 관련 타게팅 광고가 하루 종일 뜬다. 검색할 수고를 덜어줘서 좋기도 한데. 결제 후 밀려오는 시원함과 찝찝함. 나는 현대 시스템에 욕망을 수발 받는 호구요...

최근에 본 메시지 중에는 그린피스 UK ‘Don’t stop’ 캠페인 영상이 인상 깊었다. 우아하게 음악이 흐르는 파티장은 점점 탐욕의 장으로 변해간다. 연기도 너무 잘하고 영상도 좋음… 보다 보면 왜 탐욕이 7대 죄악이라고 했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 파티에 물이 오르는 동안 주방에선 물이 끓어 넘치고 불이 붙는다. 무대에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상황에서 젊은 밴드가 노래를 한다. 노래 제목은 ‘Don’t stop’. 내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메시지다. 아무도 안 듣는다, 아무도.. 이 캠페인 영상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파티하며 즐기고 있는’ 오일 컴퍼니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Don’t stop’ 뒤에 뭘 붙여도 이상하지 않아서 나는 처음에 ‘Don’t stop party’인 줄 알았다. 걍 그렇게 계속 파티나 해라… 이러다 다 죽어… 이런 메시지인 줄 알았다.

여튼 결론은 사기 전에 생각했나요. 생각하자.

끝.


짧게 자주 생각하는 거 기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