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을 선택할 수 없다

2022년 12월 22일

어떤 능력은 이미 자신에게 그 힘이 있다는 걸 자각해야만 쓸 수 있다. 얻어 내기 위해 애써 노력할 게 아니다. 능력을 자각하고, 씀으로써 능력이 주어진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나티코는 우리가 이미 가진 몇 가지의 능력을 일깨운다. 생각을 바라볼 힘. 생각을 내려 놓을 힘.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을 힘. 이것들은 우리가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는 도구다.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내려놓을 능력이 있습니다. 관심을 어디로 돌릴지 또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일엔 얼마 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선택할 능력도 있지요. 여러분에게도 당연히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글을 통해 만난 그는 편안함에 다다른 듯 하다. 그는 한 번의 인생에 세 사람의 생애를 살았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그중 첫째론 괴롭고 번뇌했던 젊은 그가 있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다국적 기업의 최연소 임원이 되기 직전이었던 이십대 중반. 분주히 성공에 가까워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그는 모든 것을 멈춘다. ‘가만히 있어도 불편한 삶’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첫번째 삶을 떠난다.

나티코란 법명의 뜻은 ‘지혜가 자라는 자’이다. 그는 머리를 깎고 태국 밀림의 사원으로 들어간다. ‘나티코로서의 삶’을, 수련을 시작한다. 이후 17년 간 승려로 살다 마흔 여섯에 사원을 떠난다. 다시 속세로 돌아온 그는 우울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 삶의 자리를 찾는다. 명상 수련을 설파하며 아내와 가족과 중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이 책을 쓸 무렵 그는 근육의 힘을 잃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글을 통해 만난 그는 편안함에 다다른 듯 하다.

나티코는 말 거는 저자다. 번뇌하고 어설펐던 스스로를 그대로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명상 수련을 할 때 얼마나 잡생각이 들었는지, 새벽 수련을 할 때 졸다가 몇 번이나 머리를 박았는지, 하루 한 끼만 먹으라는 규율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이야기한다. 자신을 죽어라 미워하던 다른 수도승과 그에게서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다. 승려로서의 삶을 끝내고 속세에 나왔을 때,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뒤쳐지고 쓸모 없다’고 느꼈는지 말할 때는 그 고통과 불안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 시간들 안에서 자란 나티코의 지혜를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함께 구하게 된다.

이 책은 끊임 없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스스로에게 어떤 ‘기분’을 강요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나의 마음을 가장 쓸어주었던 건 ‘우리는 생각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다. 생각은 통제할 수 없다. 다만 그 생각을 믿을 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생각을 바라볼 수 있다. 거리 두어 바라보면 안개 같던 생각이 물화 되어 그 자리에 남는다. 정확히 남겨두고 떠나보내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그 자리에 우리의 진심이 운신할 공간이 생긴다.

나는 나티코가 쓴 문장을 여러번 곱씹는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을 필요가 없다. 나는 틀릴 수 있다. 나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나는 과거에 대한 회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미래에 대한 예측과 불안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더 존재하기를 택할 수 있다. 충분히 더 존재하기.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확히 남겨두고 떠나보내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그 자리에 우리의 진심이 운신할 공간이 생긴다.

끝.


연말에 제주에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