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해요

2024년 02월 04일

여름을 좋아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올해는 여름을 기다렸다. 해가 쨍쨍하니 이마를 때리는 순간 생각했다. '아, 한강 수영장에 갈 때가 되었다.' 나는 설렘이 차올라 코끝을 하늘로 치들었다. 현관문을 대차게 열고 들어가며 애인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수영장 가야 해!" 난데없이 확신에 찬 내 표정을 보고, 애인은 웃었다.

수영장은 락스 냄새가 나. 바다는 미역이 있어서 싫어. 나는 여름이면 유독 핑계가 많아지는 사람이었다. 바다로 놀러 가서 모래사장에만 앉아있는 애. 주로 돗자리를 지키는 쪽. 빨간 파라솔 아래, 그늘에서 책을 읽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찝찝하고 더운 날씨. 바다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소금기 섞인 바람을 맞으며 나는 돗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사람들은 왜 여름을 사랑할까. 의아했다.

작년에 갭이어를 시작하면서, 사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보자 결심했다. 겨울엔 눈 덮인 산을 걷고, 가을엔 붉어진 숲속을 걸었다. 여름엔 바다와 수영장을 순회했다. 처음으로 여러 벌의 수영복을 샀다. 어려운 쇼핑이었다. 수영복 모델들의 몸은 드라마틱했다. 태평양을 건널 수 있을 듯한 근육질 몸매. 근육 물범 같은 언니들과 핫바디 언니들의 사진을 넘겨보았다. 이 몸도 내 몸이 아니고, 저 몸도 내 몸이 아니어라. 수영복 쇼핑은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나는 수영복으로 내몸의 결점을 어떻게 가릴지 고민했다. 비교는 오랜 습관이 되어있었다.

자기 몸을 숨기지 않고 자라는 여자아이가 있을까. 내 친구는 피부가 하얘서 남색 교복이 잘 어울렸다. 나는 까맣고 오동통했다. 둘 다 치마를 입고 걷던 중이었는데, 뒤에선 동아리 선배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를 비교하며 키득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내가 그들의 말을 들었다는 걸 들킬지도 모르니까. 당황스러움. 엷은 수치심. 모욕감. 익숙해지지 않을 감정에 익숙해지며 여자아이들은 자란다.

나는 자유를 배우고 싶다. 세상이 내게 준 나쁜 것들을 가볍게 제치고, 세상을 새롭게 경험할 방법을 나에게 주고 싶다.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는 일은 내게 해방이었다.

작년 8월 지중해 바다에서 나는 처음으로 비키니를 입었다. 바르셀로나 해변에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누워서 해를 쬐고 있었다. 바닷바람과 햇살에 명태를 바짝 말리는 풍경 같기도 했다. 해를 너그러웠고, 모두가 넉넉히 쬘 만큼 커다랬다.

프랑스 니스의 해변도 갔다. 해변 앞에 숙소를 잡고, 텐투식스 일정으로 바다로 출근했다. 수영하고 나와 딱딱한 빵을 뜯 으며 오랑쥐(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배가 차면 다시 물에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거기서 온종일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바다는 커다랗고 아름다웠다. 바다 한가운데에는 프랑스 할머니 두 분이 떠 있었다. 프랑스어로 수다를 떨며 바다에 동동 떠 있는 할머니들이 귀여웠다. 나는 물 위에 누워 프랑스어를 들었다. 종종거리는 듯하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한 그 말소 리가 재밌었다. 나도 비키니를 입고 친구와 바다에서 긴 수다를 떠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는 올해 두 번째로 한강 수영장에 갔다. 빨파노초 여름의 색. 파랗게 물이 튀고, 서울에서 가장 하늘일 커다랗게 보이는 곳에서 수영했다. 몸이 차가워졌다 싶으면 물 밖으로 나와 누웠다. 에어프라이어에 편안히 누운 감자처럼 몸을 태웠다. 오일을 꼼꼼히 바르고, 몸 전체가 햇볕으로 따스해지는 걸 느낀다. 여름의 색깔과 온도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나는 몸으 로 계절을 느끼며 행복했다. 자유는 그런 것 아닐까? 더 자연스러운 것. 내 몸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내 몸으로 느끼는 것. 내 몸으로 한 계절을 살아가는 일을 사랑하는 것. 여름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 다.

나는 자유를 배우고 싶다. 세상이 내게 준 나쁜 것들을 가볍게 제치고, 세상을 새롭게 경험할 방법을 나에게 주고 싶다.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는 일은 내게 해방이었다.

끝.


리무브 팝업 전시를 위한 글이었다. 자유로운 몸이라는 주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