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올 사랑을 읽고

2023년 07월 11일

트레바리 ‘앞으로 올 사랑’을 읽고 공유한 발제문. 블로그에 남겨둔다.

‘앞으로 올 사랑’ 재밌게 읽으셨나요?

님이 재밌는 후기를 남겨주셨는데요.

"라지 사이즈의 피자 한 판에 토마토 소스, 3가지 치즈, 페페로니, 파인애플, 올리브, 갈릭 디핑, 초콜릿, 마시맬로 등 20가지 토핑이 잔뜩 들어간 조각을 해치워 먹으며 천천히 음미하는 것과 같았다.”

토핑이 ‘잔뜩 들어간’ 피자, 어떠셨어요?

이 발제문에서는 이 이야기 ‘꼴’이 가진 의미를 이야기해보려 해요. 왜 저자는 이런 형태로 이야기를 썼을까. 이 형태 자체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저는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앞으로 올 사랑’은 700년 전의 소설 ‘데카메론’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1. 10가지 주제를 챕터별로 따르고요 (각자 좋아하는 이야기, 쓴맛을 본 뒤 결실을 맺는 이야기, 오랫동안 열망하는 것을 손에 넣는 이야기 등… )
  2. 전염병 시대 이후의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요. (흑사병-코로나19)

데카메론에 대해서 알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 소설은 1353년, 보카치오라는 인문학자가 썼습니다. 흑사병이 지나가고 2-3년 정도 후 썼다고 해요.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 사망자가 500만~16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요. (정확한 집계가 없어 여러 추정치의 최소 최대값을 가져왔어요.) 당시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2,500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조한 숫자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불러올 수 있을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불태워지는 시신들, 사망한 가족과 친구들, 문을 닫은 동네의 모든 집합공간.

이런 절망 속에서 쓰인 소설이 데카메론입니다. 이런 절망 속에서 젊은이들 열 명이 함께 도망을 칩니다. 어느 장소에 모여 ‘서로 먹고, 노래하고, 돌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천일야화 같은 구성인데요. 열 명이, 열 개의 주제를 돌아가며 말하여, 백 개의 농담 같은 이야기가 완성 됩니다. 그게 데카메론이에요.

전례 없는 재난 속에 쓰인 이 소설은 700년 간 잊히지 않고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특히 제가 재밌었던 건, 데카메론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재난이 왔으니,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하자- 이런 시도들이 더 있었거든요. 앞으로 올 사랑이란 책 말고도 또 있었어요.

3년 전, 뉴욕타임즈에서도 코로나 시대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29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단편 소설을 썼고요. 저는 일부만 읽었는데, 정말 시시콜콜 그 자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빈다.

취향이 다른 커플이 함께 격리 되면서 겪는 자존심 싸움의 이야기, 격리 중인 지구인들에게 행성 간 원조 패키지의 일환으로 외계인이 파견된 이야기, 격리 중인데 찾아온 전남편이랑 원나잇한 이야기 등등… 그 어떤 엄숙함도, 숫자도 끼어들지 않아요.

원작 데카메론도 그렇다고 합니다. 한 수녀가 숨겨둔 애인의 바지를 실수로 두건 대신 뒤집어 쓰는 이야기도 있고요. (저자가 그래서 서문에서 작가가 안 잡혀갔을까 걱정하는 부분이 있죠..) 연애 얘기 뭐 누가 누구 배신한 뒷담화… 자 잠깐, 꽤 심각한 시대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 이 책이 나왔다고? 싶은 거죠. 그리고 인류의 위기 때마다 우리가 반복해 찾고 있는 이 데카메론이라는 이야기는 왜 특별한가. 왜 이 구조를 새로운 시대로 불러오고자 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오래 사랑 받고, 절망 속에서 다시 찾게 되는 이야기 구조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 특별함이 뭘까요? 제가 입술을 뜯으면서 고민해봤는데요.

첫번째.

이 이야기는 절망을 ‘다루지 않고’, 절망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2천 만명이 죽는 재난 후인데, 누가 얼마나 죽었고 이게 얼마나 큰 위기고...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코로나 시대에 미디어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왔는지 보세요. 미디어의 언어는 항상 숫자와 현황을 중계해 왔습니다.

저자 정혜윤은 서문에서 존 버거를 인용해 이 점을 언급합니다. “때로 미디어의 언어는 모든 것을 계량화할 뿐, 본질을 말하는 데 실패한다. 실업률, 여론조사, 성장률, 채무는 이야기하지만 슬픔이나 후회, 희망 그 자체를 성공적으로 전하지 못한다.”

그런 이야기들도 필요하죠. 그런데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선 재난이 주인공일 뿐, 재난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별 것 아닌 인생은 사라집니다.데카메론의 이야기 구조에서는 그 시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잠깐 도망쳐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배경’으로만 재난이 등장합니다. 재난을 뒷전에 두죠. 사람이 앞전에 오고요.

책 ‘앞으로 올 사랑’에서도 그렇게 사람을, 재미를, 현실을 앞전에 둡니다. 홍콩 메트로폴 호텥 911호에서 사촌의 결혼식에 가려던 남자가 사스에 걸렸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 옆옆 객실에 묵은 캐나다 할머니의 존재는요? 여튼 그런 식인 거지요.

절망 자체를 주목하는 일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직시할 책무를 느끼죠. 근데 가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을 달아나게 하고 있지는 않나?’

회의실에선 문제가 있으면 곧장 그 문제를 분해하는 대화를 나누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대체로 자신만만해보이고 - 실제로 아니더라도 - 막 지적하고, 도덕을 내미는 일에 익숙하죠. 그런데 삶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가 항상 그럴 수 있나요?

누군가 죽고, 우리가 무언가를 잃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장 알 수 없을 때. 그럴 때도 그런가요?

문제를 주구장창 말문제를 해결할 힘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스며드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죽고, 우리가 무언가를 잃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장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렇죠.

절망을 직시할 수 없을 때에는 빗겨봐야 합니다. 도피도 하고, 직시하지 않고 빗겨보면서, 사람들 곁에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 사이에 있을 무언가가 필요하죠. 그게 ‘각자의 목소리로 돌아가며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좀 산만하고, 많아 보일 수 있죠.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액자형 구조는 우리가 놓인 절망을 인식하면서도 서로에게서 달아나지 않고 대화할 자리를 열어줍니다. 전염병은 서로를 두렵게 만듭니다. 연결을 기피하게 하죠. 누굴 만나도 죽음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너무 당황스럽고요. 그런데 이 데카메론의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우화처럼 사람들에게 표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시콜콜하다’거나 ‘허무맹랑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냥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라. 솥에 돌을 끓여도 함께 불을 쬐고 있으면 따뜻한 것처럼. 무용한 것이어도 허무맹랑한 것이어도 상관 없다.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으로 의미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앞서 말한 것처럼 원작 데카메론은 열 명의 젊은이가 둘러 앉아 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목청 높여 연설하는 게 아니에요.

열 개의 주제에 열 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꺼냅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해본 여러분도 아무 십분 공감하실 텐데요. 열 사람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절대로 이건 한 사람이 주도하는 이야기가 될 수 없습니다. 말에는 생명이 있어서 앞선 말에 붙고, 뒤에 오는 말에 붙으며 흐름이 이어지죠.

점과 선과 면이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을 만들어내듯이, 한 사람과 두 사람, 그리고 둘러 앉은 세 사람부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우주가 됩니다. 열 사람이 함께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들도 모르는 어떤 목적지로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 구조의 산만함은 필연이기도 하고, 의도이기도 하며, 이 이야기가 훌륭한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보카치오는 열 명의 사람을, 뉴욕타임즈는 29명의 소설가를 모아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야기를 끌고 갔습니다. 어딘가로 향하자, 이야기를 함께 끌고가자는 제안이죠. 각자의 이야기 조각을 모아 뭔지 모를 결말로 가자는 겁니다.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의 목소리들을 모았나요? 정혜윤 작가는 자신이 사랑하고 연결된 것들을 이야기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건 멸종위기종을 찾아 나선 과학자이기도 했고, 굶어 죽어가며 종자를 지킨 이들이기도, 과로사한 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 씨이기도,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이기도 살처분 된 동물들과 박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 자리에서 밤새 이야기를 떠들며 답없는 이야기의 결론을 함께 만들고 싶은 존재들인 것이죠.

책 배경과 선정은 이렇고요. 덧붙이자면 나에게 특히 저에게 잘 접속되었던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임에서 저도 이야기 나누고 싶은 몇 가지 단어를 추출해봅니다.

  • 골든 디스크 - 우주와 인류를 위해 영원히 최고로 좋은 것을 고르는 일. 그렇지 못한 지금에 대해서.
  • 왜 상처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 - 미래의 인간 가능성. 우리가 상상하는 ‘실마리 있는’ 디스토피아.
  • 사랑하는 00과 함께 살기 - 침묵의 가치에 대해서. 앞뒤의 순간을 모두 알고 사랑하는 화가에 대해서.
  • 오늘의 가장 좋은 시도와 내일의 가장 좋은 시도 - 무력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모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트레바리 뉴러브 클럽에서 선정했던 책. 재밌었다. 다시 언제든 들춰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