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뚱하기

2023년 04월 12일

아침 기상 시간을 바꿨다.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 반으로. 밤 열 시 반에 잠들고 다섯 시 반에 깨면 딱 7시간 수면이다.

원래는 열 시 반에 자고 여섯 시 반에 깨도록 알람을 맞춰 두었다. 8시간 수면을 기준으로 두고, 어떨 땐 더 자고, 하여튼 모자람 없이 잘 자며 쉬었다. 나는 지금 스스로 어느 정도 엄격게 휴식기를 주는 중이다. 쉼만큼은 스스로 단단히 지켜줘야 하는 때라고 믿고서.

그런데 어느 날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온몸의 구석구석을 느껴보면, 의외의 사실이 튀어나온다. 아침에 명상하면서 느껴보건대, 나는 여덟시간을 꽉 채워서,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잔 날 훨씬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오호라? 더 자면 더 쉴 줄 알았는데. 더 쉬게 해주면 더 회복할 줄 알았는데.

일정 시간을 넘어가면, 얕은 수면 안에서 좀 괴로워진다. 부유물이 많은 곳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내 의식의 수면 바로 밑은 빛은 들고 부연 연못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의식이 깨면 따라서 시각적 심상들이 뻗쳐나간다. 의식의 물밑까지 잠이 깨면, 어지럽기 짝이 없다. 기억도 못 할 이미지들 속에서 부유하다 노곤해하며 잠에서 깬다.

적당한 시간을 자면 ‘적당'이란 말의 의미를 알듯 몸이 담백하게 깬다. 어디가 저린 곳도 없고, 아침에 느껴지는 저혈압의 기미도 요즘엔 덜 하다. 손끝 발끝까지 피가 바로 돌지는 않기 때문에, 잼잼을 해줘야 한다. 발바닥을 만지면 꼬무락 펴내는 바빈스키 반사를 인간 모두 가지고 있다. 혹시 혈액순환 때문은 아닐까. 아침에 잠이 깨면 나는 손 잼잼, 발 잼잼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비몽사몽 눈을 비벼 세수하고, 입가심한다. 아직 푸르스름한 결의 아침. 거실 소파에 앉는다. 돈 들여 새로 산 소파다. 쿠션이 꺼지지 않는 것을 엉덩이뼈 부근에서 느낀다. 뿌듯해한다. 아침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좋다. 그렇게 앉아서 한 삼십 분, 한 시간 정도 눈을 감고 느낀다. 명상이랄 수도 있고, 그냥 깬 듯 만 듯 있는 걸 수도 있고.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과 세상의 접촉면에 기류가 흐르는 게 서늘하고 새롭다. 공기층이 있다. 나는 사이에 있는 혼자. 복수일 수도 있는데 단수다. 끈끈할 수도 있는데 떨어져 있다. 약 삼천칠백 세대가 사는 이 40년 된 아파트 단지에서, 나는 이 칸 안에서 하나. 그 감각이 세수처럼 개운하다. 그러고 나면 나는 또 완전히 새것인 하루를 다시 살아보고 싶어진다.

나는 또렷함의 농도와 흐릿함의 농도를 맞추고 싶어 한다. 너무 노려보며 살면 눈이 돌아갈까 봐. 한 살 때 눈에 혈종이 생기고 나서 나는 물고기 시력에서 인간 시력으로 발달하질 못했다. 한 눈은 물고기 시력, 한 눈은 인간 시력. 그래서 생긴 건지, 아닌지 몰라도 사시가 생겨서 눈이 돌아갔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사람 몸은 눈치가 빨라서 쓸모없는 걸 안 쓴다. 안 써도 되는 눈은 안 쓰고, 쓸모 있는 눈은 더 쓰다 보니 시력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스무 살에 안경을 맞추려니 렌즈값이 이십만 원이 넘었다. 한쪽 렌즈는 압축을 서너 번은 해야 해서 값도 서너 배쯤 되었다. 무테안경은 쓸 수가 없었다. 차이가 나니까. 나도 너무 나니까.

사람은 원래 두 눈을 써서 초점을 맞춘다. 사람 몸을 세로로 반으로 접으면 양쪽이 균형을 맞춰 접힌다. 콩팥 두 개. 눈 두 개. 폐도 양쪽에, 심장도 우심방 좌심방. 왼발, 오른발, 오른 귀, 왼 귀. 왼쪽 어금니, 오른쪽 어금니. 표준형은 일단 그렇다. 반으로 접을 수 있게 생긴 몸.

균형이 깨지면 흔들린다. 어지럽고, 무엇이 균형인지 알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균형이 깨지고 나면, 정확한 균형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란 어렵다. 딱 정확한 영점을 맞추기란 요원한 일이 되고, 영점 주변에서 영원히 헤매며 비틀거리는 일, 어지러워하는 일을 이제 ‘균형이 맞은 상태'라고 부르게 된다. 나는 뭐랄까. 균형을 찾고 있다.

적정한 상태를 욕망하면서, 몸과 마음을 맞춰보다가 균형이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되었다. 마침 질문을 받을 사람이 있었다. M은 간단히 답했다. 균형을 맞추려는 마음만큼 위태로운 게 없다고.

“생각해 봐. 영점을 맞추려는 것만큼 불안정한 상태가 없어. 그건 계속 흔들리는 상태가 되잖아. 한쪽으로 확 기울어버리는 게 오히려 안정한 상태지. 그거 가짜야. 완전히 쏠린 상태가 안정한 상태야.”

주머니가 뒤집히고, 균형 잡기에 실패하고, 좁은 길에서 결국 쓰러지고, 쏟아져서 덮이고 요란하게 기울어지는 일. 그런 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뭔가 망쳐버린 듯이 과하게 하고 나서야 웃음이 터졌던 일들을. 안정한 상태란 오히려 무언가 과한 상태임을, 완전히 기울어있는 상태.

기울고 싶어서 기우뚱 어딘가로 무게를 한 번 실어보는, 그런 시간들.

그렇게 뭔가 망쳐버린 듯이 과하게 하고 나서야 웃음이 터졌던 일들을.

끝.


수요일 평일인데 교자마스터 이자카야에서 기린 생맥주 두 잔 마시고 기분 좋아서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