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소멸

2023년 03월 14일

국가가 소멸 위기라고 한다. 21년 출생아 수는 26만 명이다. 내가 태어난 90년에는 64만 명의 아동이 태어났다. 타노스가 지구에 온다면 한국 정도는 스킵해주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알아서 소멸하고 있으므로. 이걸 문제 상황으로 시급하게 보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구분도 흥미롭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그래 갈 때까지 가야 이 사회가 바뀌지.” “여성의 삶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또 아기 캐리어로만 쓰려고 해?” “괘씸죄로 한국은 인구 소멸 가도 할 말이 없다.” 비슷한 심정이다. 26만 명 숫자 보고 내가 제일 먼저 생각 났던 건 한국이 해외로 입양 보낸 사람들의 수이다. 70년간 20만 명 정도를 입양 보냈다고 했었지. 그 숫자가 겹쳐 보였다. 입양 산업 만들어서 한 명 당 3천만 원씩 받고 애기를 팔았던 나라. 피임 수술 해주러 다니면서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나라. 난 이 나라 참 모르겠어. 너무 빠르고, 너무 열심이고, 너무 처절하고.

그래. 나도 나이 먹었고 나도 책임자다. 이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 그런 생각으로 심란하기는 하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이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새로운 글을 써내려가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글은 당연히 비유적인 의미고, 기록이고, 역사고, 기사고, 사업 계획이고, 설득을 위한 연설문이다. 이전처럼 완전히 절망하기도 겸연쩍고, 정파적으로 한쪽이 답이 아닌 것도 알겠다. 하여튼 보는 눈에 현실성은 더 생긴 모양인데 이래저래 정치적 기획을 만들고 추진할 동력이 잘 안 생기긴 한다. 여성 운동도 진보 운동도 소강기인 것 같고.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생물학적 비유를 써볼까. 태반이 없다. 어디 딱 달라붙어 있는, 영양분이 축적된 비빌 언덕이 없다. 이념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힘이 잘 안 생긴다.

저출생 문제의 테이블

저출생 문제는 그래도 자리를 맡았었으니까 계속 눈에 밟힌다. 했던 이야기 반복하는 것 같아 지겹기도 하지만. 17년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 위원으로 초대받았다. 기여한 바가 많이 없어 겸연쩍지만 최연소 위원으로 주목도 받았고, 언론에서 발언권도 많이 얻었다. 당시에 나는 낙태죄 폐지 관련 운동의 주변에 있었고, 전국 가임기 여성 지도 같은 걸 만들면서 국가가 이상한 쪽으로 시동을 걸 때라서,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이 더 중요하다는 말. 산아 제한을 성공적으로 해낸 나라가 한국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방식- 여자 몸에 손대서 인구 조절을 하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산보다 낙태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기겁했던 사람들이 몇 떠오른다.

위원회 경험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첫 번째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해서 연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자들도 많이 오고, 사진도 많이 찍혀서 신문 1면에 실렸던 자리다. 서로 인사말을 돌아가며 나누는 것만으로 삼사십 분이 족히 걸리는 커다란 원탁에서 논의했다. 그때 한 관료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농담했다. ‘저는 애를 셋 넘게 낳았습니다. 애국자입니다.’ 발언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자기소개에 덧붙여 이런 말을 했다. ‘애를 여럿 낳았다는 걸로 애국자라고 하시는 농담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출산으로 애국하자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원 중 원룸 사는 사람은 확실히 나뿐인 것 같았다. 대부분 학계에서 초대받은 분들이었고, 낮 시간에 회의를 올 수 있었다. 자녀가 결혼할 나이인 분들이 더 많았다. 나는 월세 35만 원에 보증금 500만 원으로 첫 자취방을 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직함이야 대표지만 돈도 없었고. 불맛 곱창 이런 레토르트 식품 사다가 부엌에서 해 먹고 나면 매운 냄새에 기침하며 잠이 들었다. 그 방이 4평 정도 됐었나. 작은 원룸이라 부엌과 침대가 붙어있었고 거의 부엌께에서 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독립’이라고 친구들도 불러서 놀고 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서 세워놓고 그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저출생 논의하는 테이블, 그 자리에 있는 스스로가 너무 어색했다. 이해관계가 너무나 달랐으므로. 어떤 위원이 우리 아들이 애를 안 낳더라, 진짜 젊은 사람들 애 안 낳는다 - 이런 이야기를 하시던 와중에 내가 저는 월세 35만원 원룸에 살아요- 했다. 1.5룸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아이 낳는 건 모르겠고 고양이는 키우고 싶어요. (이때는 알러지가 있는 걸 몰랐다) 그때부터 나만 어색한 게 아니라 다 같이 어색해졌다. 돈 없고 젊은 여자란 자격으로 간 자리니까 더 눈치 안 보고 이야기 많이 하려고 애썼었다. 어색해도 침묵을 깨고.

모든 아이가 행복한 나라 VS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요새 2월부터 종이신문을 보는데, 저출생 얘기하는 거 보면 그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와 기분이 비슷하다. 연금 유지를 위해서, 사회의 동력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지역의 소멸을 막기 위해. 이 모든 말들은 수단으로 인구를 동원하려는 관점을 가진 말들이다. 동원되는 입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책을 구성할 때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지, 어떻게 정책 대상을 쪼갤지가 아주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자원 분배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거 같고. 난 행정학은 모른다. 아무튼 내보내는 공적인 메시지에서도 다 티가 난다. 가끔 이상한 메시지들 나올 때 있다. 그 뭐지. 얼마 전 버스에서 라디오 방송이 나오는데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을 위해 어르신들을 위한 키오스크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디지털 약자란 말은 또 뭐야? 권리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언어가 아니라, 약자라고 부르고 권리 주며 생색내는 언어다. 정책에서 함께하고자 하는 대상인 고령층은 저 말이 귀에 한 번에 들어올까? 키오스크. 디지털 약자. 동행. 정책 언어가 구려도 너무 구리다. 뭘 눌러야 할지 헷갈리는 주문 기계, 어려우셨죠? 모두가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서울시가 큰 글씨 주문 기계를 지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이야기에서 좀 벗어났다. 이건 사족인데.

저출생 문제에서도 관점 바꾸라는 제안이 첫 회의부터 있었다. 민간위원이었던 이원재 소장님의 발언으로 기억한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책임지겠다고 하자. ‘아이가 행복한 나라’ 만들자는 비전을 제시하자는 이야기였다. 누구의 아기든, 중소기업 다니든 자영업 하든 대기업 다니든 공무원이든.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애는 모두 행복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아이 단위로 지원을 하라는 거였다. 당시에 어렴풋이 생각나는 걸로는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목표 아래 세부 목표가 떨어졌다. 그러면 대기업 육휴 지원, 중소기업 육휴 지원… 이런 식으로 정책 자원이 떨어진다. 안 그래도 중산층만 애낳는다 - 세종시 공무원만 애 낳는다는 말까지 있는데, 재생산의 계급화가 심화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이지 않나 싶다. 자영업자가 애 낳을 때 육아 휴가 지원이 와닿나? 자기 가게 하는 건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데 그게 와닿나? 5명 짜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데 그게 와닿을까? 애 낳으려고 스타트업에서 외국계 회사로 이직한 아내 이야기를 한 기자가 칼럼으로 썼더라. 뭔지 너무 알겠고, 그러니까 어느 직장 다니냐에 따라서 애 낳고 못 낳고가 갈린다. 그 갭을 줄이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 틀 안에서 생각하고 지원하면 계속 그 틀만 보고 지원하게 되지 않나 싶다. 이 틀에서 전통적으로 가족 관계 등록부 가지는 ‘부모’가 없으면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아동 양육 중심의 지원이라는 이 문제의식은 이후에 계속 저출산위 안에서 논의된 것 같다.

태어난 아이에게 목돈 바우처 통장

생각해봤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 단위로 지원하자. 가족 밖 아이든, 미혼모의 아이든, 이주민 아이든 누구든 상관 없이 모든 아이에게 한국에서 태어나면 주머니 하나씩 채워주면 좋겠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애들에게 적어도 청소년 시기까지는 다 똑같은 수저 하나씩은 입에 물려주겠다는 비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일차로 보편적 출생 등록제 해서 태어나면 다 출생 등록하고, 이차로 아동 수당을 확대 편성해서 아동 책임 예산이란 이름으로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주는 건 어떨까? 장애인 권리 예산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윤석열 정부 정책 중 하나인데, 개인에게 현금 및 바우처로 얼마간 지급하고, 수요자가 자기가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서 구매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휠체어 구입 지원 얼마, 교통비 얼마, 활동 지원 얼마, 이렇게 지원을 해주고 신청하라고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수요자의 욕구에 기반한 지원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본인이 서비스간 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이점이고. 일견 좋아 보이는데 비판하는 쪽 목소리도 거세다. 전장연에서는 ‘주어진 예산 내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고, 공공성 강화 없이 시장에만 맡기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너무 예산이 적고, 서비스도 공급이 안 되고, 공공성이 보장이 안 되어 있는 상황이면 소용없다는 거다.

보육 문제에서도 공공 보육 서비스 부족하고, 예산 적게 주고 하면 똑같이 문제가 생길 거다. 음. 거꾸로 공공 보육 서비스를 강화하고 종류도 늘리고, 예산 충분히 편성하고, 줄 수 없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이름으로 무조건 바우처 통장을 국가가 만들어주는 거다. 그걸로 보육 서비스 구매하고, 아이 키우는 시간의 제 3자가 같이 지탱해주는 기둥을 만들 수 있게. 돈 10만 원씩 주는 건 효용도 안 느껴진다. 돈이 있어서 좋은 건, 미래 계획을 할 수 있고 예측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인데 그렇게 줘서는 뭐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게 마음에 비빌 구석이 될까? 안 될 거 같다. 나는 태어난 아이에게 목돈에 가까운 바우처 통장을 쥐어줬으면 한다.

돌봄의 외주화 문제

모르겠네. 나는 애를 낳는 상상을 하면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고민만 하게 된다. 그런데 위의 제안처럼 하면, 결국 국가가 가족의 기능이 약화 하는 부분을 돈 주고 사라고 하는 건데, 부작용도 있겠다. 애를 가족이 볼 시간이 거의 없는 거지. 다 시장에 내맡겨서 삶이 외주화된다. 비슷한 걸까? 요양 병원 문제랑. 국가가 돌봄 공백 막으려고 보험으로 요양 병원 비용 대주고 그러는데, 그래서 다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아. 집에서 돌보는 사람이 가족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서 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된 사례가 있다. 가족 요양보호사제도는 어떻게 보면 ‘국가만’ 안전망이 되는 것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돌봄을 수행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네트워크들이 다 작동될 수 있게 보조해줄 수 있는 정책이다. 가족이 있으면 가족이 작동할 수 있게, 아니면 지자체가 작동할 수 있게, 국가 공공 안전망인 병원이 작동할 수 있게. 이런 돌봄의 공동체들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고려하는 설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안 되면 돈이 필요하다. 도움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를 뒷받침할 때 하나만 주면 너무 추가 쏠린다. 야근하고 애 얼굴 못 보고 번 돈은 돌봄 비용으로 다 쓰는 삶이 행복할까? 휴직하거나, 한 일이년 인생에서 쉬어갈 때가 있을 때 쉴 수 있어야 뭐든 할 거 같다. 시간 있어야겠고. 돈도 있어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못 돌보는데, 그냥 알아서 해결하라 그러면 다 결국 친정엄마, 시엄마한테 기대서 애 봐야 하고 여자들끼리만 또 가족드라마 찍는다. 가족 요양보호사 제도처럼 가족 육아 돌보미 제도 만들 수 있지 않나. 돈 지원하고, 돌봄 커뮤니티가 강해질 수 있는 정책도 설계하고 그래야 한다.

여자들이 결심하기가 너무 어렵지. 야근하고 번 돈 다 드리고 다음날 야근하더라도 나는 일을 할 것 같다. 일하는 여자들 그렇게 산다더라. 그리고 그게 차라리 낫다고. 일 하고 이모님 그 돈 다 드려도 내가 일하러 나가는 게 낫다고. 그러면 적어도 경력은 안 끊기니까. 우울증도 안 걸리고. 몇 년만 그렇게 지내고 학교 가면 해결 되겠지. 해결이 안 되려나?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건 좋은 걸까? 내게 선택권이 있으면, 같이 돌볼 사람들이 있으면 2년에서 3년 정도 애랑 시간 보내고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일년 이년 키우는 것도 아니니까. 6시에 재깍재깍 퇴근하는 은행원도 피디수첩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8시 출근 밤 12시 퇴근 같다고. 육아 출근, 육아 퇴근이 또 따로 있기 때문이다. 야근까지 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사회에서 기준선으로 삼는 적정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뭐 가능할 수가 없다. 과로사 안 하고 한국에서 살게 해줘라.

꼭 애가 태어나야 하나

그런 생각은 지울 수가 없네. 꼭 그렇게 애가 더 태어나야 하나. 급격한 인구구조 전환의 충격에 빨리 잘 대비해서 정치적으로 큰 전환을 이뤄내는 게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저출생이라는 문제가 고칠 일인가. 대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애가 안 태어나는 건 한국에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여러모로 암담하다는 뜻이다. 태어나도 자살하고. 자살률 1위 국가가 출생률 하위인 게 뭐 그렇게 이상한가? 저출생 문제는 미래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현재가 감당이 안 돼서 생긴 문제다.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까? 그 질문에는 이미 실증적 답이 있다. 17개 지자체 중 합계출산율이 1명을 넘긴 곳은 세종(1.12 명) 뿐이다. 세종시 공무원은 애 낳는다. 서울 수도권 안 가고 충남에서 일찍 졸업하고 결혼한 여자들, 은행원 하는 남자들은 애 키운다. 다 공무원 만들 순 없겠지만 공무원에게 보장되는 사회적 안정성- 그 정도 보장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지 않다는 뜻이겠지. 근데 뭐… 근무 시간도 다시 늘어난다고 하고 뭐 될까? 인생에서 일 년 쉬고 이년 쉬면 경력 끊기고 큰일 날 것 같은 한국 사회에서 그게 뭐 될까..? 그냥 똑똑한 사람들 모여 있는 좋은 회사 가서 안온한 삶 추구하거나 애 안 낳고 불안정하고 자유롭게 잘 살거나 그래야 하지 않나 싶다. 뭐 이게 하나 고쳐서 될 일도 아니고, 인구 줄어들어서 생기는 밝은 면도 좀 있지 않나. 그냥 줄어들 거 줄어든다고 인정하고 사회 구조 바뀌는 거 위에서 새로운 사회 설계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사회 설계의 방향은 어떻게 잡을까. 나는 삶의 질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삶의 질이라는 말이 좀 한가해보이므로 삶의 필수재에 접근성이 좋은 나라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필수재가 뭔가. 나는 일단 우리 사회에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건 좋은 죽음. 안전망이 되는 사회적 관계 (가족 제외). 이 두가지는 갖고 싶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는 거, 혹은 고독사 말고 다른 거 가능할까? 가능하면 그 다른 거 하고 싶다. 안전망이 되는 사회적 관계. 이건 지금 가족관계등록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제외하고, 다른 종류의 관계망도 더 가능해지면 좋겠다. 사회주택 같이 운영하는 이웃도 좋고, 지역 조합도 좋고, 뭐든 간 이 안전망이라는 게 더 다양한 종류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필수재 또 뭐 있을까. 의식주? 맞는데.. 그거보다 더. 더 나아간 거. 주. 집을 예로 들까? 나는 집에 더해서 집에서 15분 거리, 집에서 1시간 거리, 집에서 3시간 거리를 따질 때 그 안에 뭘 포함할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 안에서의 삶이 최저주거기준으로 정해졌듯이, 최저 주거환경, 필수 주거 환경도 정의할 수 있다. 15분 거리 이내 있어야 하는 거, 뭘까? 나는 역. 버스 정류장. 병원. 놀이터. 학교. 도서관. 산책할 곳. 그거 있을 때 삶이 채워졌다. 삶이 가능해졌다. 재개발 지역에서 살 때는 걷기가 싫어서, 위험해서 동네를 안 다녔다. 집에서 잠만 잤다. 파리에서는 15분 도시 만들기 에 들어갔다. 그 반경 안에 경제 활동과 생활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안이다.

1시간 거리. 1시간 안에는 경제 생활권을 넣어야 한다고 본다. 출퇴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최소 1시간 안에 출퇴근 가능하게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다. 피디수첩 저출산 다큐에서 양승훈 교수가 그런 말을 했다. 서울은 20대에 청년을 빨아들였다가 30대에 뱉어내는 곳이라고. 서울 말고 다른 거점 지역들이 1시간 내 경제 생활권이 되는 사례가 더 생겨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네. 여튼 3시간. 3시간으로 따지면 나는 세컨드 하우스 갖고 싶다. (퍼스트 하우스도 없지만..) 에이. 집 말고라도 제2의 거점 하나 갖고 싶다. 내가 어느 지역의 ‘정주 인구’는 아니더라도 ‘관계 인구’는 되고 싶다. 거기서 한 달에 세번 일을 하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든. 서울에, 집에 갇힌 삶이 아니라 한국을 좀 넓게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이걸 정책 관점에서 보자면 도시 계획에 생활권과 관계인구의 개념을 더 적극적으로 들이는 게 되지 않을까. 자원이 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그걸 퍼뜨리거나 다른 중심점을 만들어내는 일이 무조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전세 사기부터 해결이 안 되는데 무슨… 이라는 생각도 든다. 계속 한숨 쉰다. 뭐 되겠나 싶고. 그렇다고 한국 버리고 어디 갈 계획을 세우기엔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이 이 나라에 너무 많다. 모르겠네. 뭐 하나는 부러뜨리긴 해야 할텐데.

사람 쥐어짜지 않기

하지 말아야 할 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자 쥐어짜지 않기.

경제학적 관점에서 비용을 나눈 걸 봤는데, 출생 관련해서 직접 비용과 간접 비용 이렇게 둘을 쪼갰다. 직접 비용은 애 낳으면서 드는 비용이다. 애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몸조리하고. 그런 비용을 다 포함한다. 간접 비용이란 자녀 출산의 결과로 발생하는 ‘가계 소득의 감소’다. 여기서 차별적 결과가 발생한다. 여자가 퇴직하고, 남자가 일한다. 여자가 경력 단절되고 임금이 줄어든다. 비정규직 된다. 그 미래의 ‘간접 비용’에 대한 계산이 되니까 여자들은 아이를 낳는 게 인생에 큰 불확실성을 가져올 거로 생각한다. 남자도 가계 부양하기 부담스럽지만 감수해야 하는 손해의 영역이 좀 다르다. 엄마가 되면 수행해야 하는 노동도 있고, 엄마란 자리의 문화적 압력도 있고. 안 낳는 게 상책이란 계산이 여러모로 틀리지 않다.

이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여가부 폐지 올려놓고 성평등 예산은 줄이면서 여자 쥐어짜지 않기. 제발. 쥐어짠다고 애 안 나와. 여자만 죽는다.

문경시에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 하다가 규탄을 받았다. 여자 쥐어짜지 마라… 국가에서 비전 제시가 잘 안 되니까 출산률이 무슨 지자체별 점수가 되가지고 다들 숫자 달성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여자 쥐어짜지. 돈 써서 여자 수입하고. 하지 말았으면… 제발….

뭘 하면 좋을까?

Do

  • 아동 중심으로 정책적 관점 세우기.
    • 아동 보편적 출생 등록,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 지원. 아동 중심 지원 체계.
  • 물고 태어나는 수저 만들기. - 아동 책임 예산제도
    • 목돈에 가까운 현금 바우처 통장, 예산제도가 작동할 수 있는 보육 서비스의 공공성 강화, 서비스 다양화
  • 도시 계획에 생활권과 관계인구의 개념 도입해서 적극적으로 분산하기.
    • 수도권 집중 완화.
  • 돌봄 커뮤니티가 든든해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 시간 마련. 휴직 제도. 갭이어. 실업 안전망.
    • 가족 돌봄 도우미 제도로 가족 안에서의 돌봄 노동이 경제활동에 포함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Do not

  • 대국민 출산 인식 제고 어쩌고 캠페인에 돈 쓰기
  • 여성 쥐어짜기

새로운 사회 설계의 방향은 어떻게 잡을까.

끝.


신문 보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적은 글. 뭘 모르는 이야기가 많을 수 있다. 물음표로 시작해서 모르겠다로 끝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