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파는 나라

2023년 03월 04일

아이 낳으라고 쥐어짜는 현재 시점의 국가를 더 정확하게 반성하려면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한국은 아이를 팔았던 나라다. 70년 간 20만 명을 입양보냈다. 국제 입양인의 절반이 한국 출신이다. 부모가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도 우편만 보내고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제도가 2013년까지 유지됐다. 입양을 확정하지 않고 출국 시켰다가 국제 미아가 된 사건도 있다. 반품 시키듯 부모가 아이 입양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홍콩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네덜란드 외교관 부부는 한국 여아를 입양하기로 했다가 아내가 자연 임신을 하게 되면서 입양 결정을 번복한다.

해외 입양은 국가의 인구 조절을 위한 기획이었고, 단일 민족주의를 유지하는 아이디어였다. 전쟁 이후 기지촌 여성들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며 모두 입양 보냈다. 1955-1961년 사이 혼혈 아동이 5천 명 태어났고 이중 4천 명이 해외로 입양을 갔다. 인종 분리의 아이디어로서 가장 취약한 여성들의 아이들이 해외로 강제 격리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들어서도 해외 입양은 이어졌다. 국가가 아닌 외부 기관- 홀트아동복지회와 같은 입양 기관- 이 이 작업을 맡았고 이들은 **‘아이를 사고 파는 국제 시장’**의 중개자였다. 시장의 공급은 수요에 맞춰서 돌아간다. 아이를 원하는 부모가 많었고 미국의 중산층 사이에선 고급 차 한 대와 정상가정, 다양성을 품은- 이라는 가치가 ’전쟁 고아인 한국인 아이 입양‘이 필수 요소처럼 자리잡았다.

수요에 맞춰 공급이 만들어졌고 고아가 아닌 미혼모의 아이들도 고아로 서류를 작성해 입양을 보냈다. 그게 입양 부모의 마음이 덜 껄끄럽다는 이유로. 미아가 된 아이들도 고아로 적혀 입양을 보냈다. 형제복지원의 피해 증언자는 복지원 한쪽에 아기들만 들어왔다 나가는 건물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해외 입양을 예정해둔 부모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형제복지원에서 아이들의 해외 입양을 보낸 기록은 전혀 없다. 물밑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팔려 나갔을 거란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성공한 해외 입양인 신화로 일부만 드러났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를 반성하며 취임 후 청와대에 해외 입양인들을 초대했다. 부모 찾기를 돕고 감동적인 상봉의 순간들이 미디어에 등장했다. 그 뒤에는 한국에 올 수도 없었던 수많은 해외 입양인들의 삶이 존재한다. 아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이것을 해외 입양이라 부르지만 이 사건들은 강제 이주이고 인종 분리였으며 인신 매매와 거래였다. 아이들을 입양 보내기 쉽도록 제도를 조악하게 고쳤기 때문에 국적 불명 상태로 살고 있는 국제 입양인들이 있고 그들의 숫자는 2만 명이다.

얼마 전에 시사 직격에는 프랑스로 입양을 간 김유리 씨가 출연했다. 그의 한국인 부모는 경제 사정이 어려워 보육원에 잠시 자신과 자신의 동생을 위탁했다. 그때 김유리 씨는 동생과 함께 프랑스로 입양 되었다. 친부모의 동의 없이 일은 진행되었고 김유리 씨는 어린 시절 양부의 성적 학대를 겪고 19살에 가출해 양부모를 고발한다. 양모를 찾아가 다시 찾아본 입양 서류에는 그녀가 ‘고아’라고 적혀있다. 이 입양을 담당한 마담 게*지의 집을 찾아가 그녀는 끊임없이 벨을 누른다.

왜 나를 입양 보냈나요. 소아 성애자에게. 왜 한국 부모님에게서 나를 훔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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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프레시안에 대해 알아보면서 아이들 파는 나라라는 기획 기사를 알게 되었고, 일할 때는 발췌독으로 읽었던 책이라 제대로 읽고 싶어 다시 정리했다. 인스타그램 책 기록 계정에 올린 글인데 분량이나 내용이 블로그에 올려도 될 만하다 싶어서 갖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