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곳들을 빼뜨기

2023년 01월 18일

상실감이 인생을 관통하고 지나갈 때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나는 사파리에 가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기린의 머리를 봤다. 허리 디스크를 걱정하며 티익스프레스를 탔다. 차를 타고 경기도의 막국수 맛집을 찾아갔다. 주변 카페에 들러  쪽파 크림이 들어간 스콘을 먹었다. 진돗개가 낳은 새끼들의 배를 쓰다듬었다. 큰 산을 걸었다. 각 휴지를 옆에 두고 울었다. 욕을 했다. 술을 먹었다. 약을 먹었다. 해안가를 대여섯 시간 걸으니 손목에 찬 애플 워치가 계속 울렸다. 나이키 운동 앱의 걷기 기록을 경신했기 때문이다. 나이키에게 격한 칭찬을 받았다.

가장 나은 무엇은 뜨개질이었다. 나는 아침 8시에 눈을 떠 뜨개질을 시작했다. 거기에 먹고 사는 일이 달린 사람처럼. 어느 시대 여공들이 삶을 걸고 노동하듯. 아침부터 밤까지 큰 여름 가방 반쪽을 떴다. 나는 묵은 실을 품은 거미처럼 일했다. 소화 못 한 감정들을 말로 뱉을 순 없고, 거미는 뒤로 실을 뽑는다.

샬럿의 거미줄이라는 동화책에는 외양간에서 거미줄로 메시지를 쓰는 거미 한 마리가 나온다. 외양간에서 가장 작은 돼지로 태어난 녀석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거미는 애쓴다. 이 서양 거미는 '최고의 돼지'라는 메시지를 거미줄에 쓰고, 그런 몇 번의 애정 어린 노동은 돼지를 살린다.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한 말을 짜낸다. 그러나 그중에는 칭찬도 자랑도 없다. 한 코 한 코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감정들이 있다. 분노,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 원망, 고마움, 외로움, 미안함, 무기력함 그리고 자책감.

이 회로는 멈추지 않는다.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돌아간다. 우리 뇌는 가소성이 있다. 생각을 반복하면 생각의 패턴대로 뇌가 변형된다는 뜻이다. 나는 어딘가 변형된 뇌를 가졌다. 숨 쉬고 먹고 자는 기본 신진대사 중 한 과정처럼 자해에 힘쓴다. 좀 더 제대로 싸웠다면, 좀 더 제대로 의지했다면. 그런 생각이 반복된다. 상처 내며 확인하는 삶의 의지. 자다 깬 새벽에는 상실감과 참담한 기분이 먼저 든다.

이 모든 실의 얽힘은 말이 될 수 없다. 무겁게 앉아있는 나를 중심으로 실타래가 어지럽게 얽히고 불어난다. 나는 말로 당신에게 건너가겠다는 희망을 버렸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다리를 놓는 기초다. 그 기초를 포기한 뒤 어떻게 말을 꺼내 놓을 수 있을까. 고백할 필요 없는 것들도 있다. 꺼내놓으면 손상되는 진심도 있다.

마음이 아플 때는 타이레놀을 먹는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실연의 고통을 겪는 피험자들에게 타이레놀을 먹였다. 효과는 대단했다. 나는 말로는 ‘아프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힘들 때마다 ‘네가 정말 힘든 게 맞냐'고 스스로 주리를 틀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증거만을 믿는다. 손바닥에 열상이 생기면 스스로 수긍한다. 홍반이 생기는 면역계 질환이다. 다리에 멍 자국이 생기면 수긍한다. 헛구역질, 설사, 두통, 이명, 곰팡이 피부염이 도지면 수긍한다. 아, 드디어 내가 아프구나.

나는 말은 믿지 않는다. 고모는 자주 할머니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말했다. 술에 취해서. 나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마시면서 반복되는 그 정경을 그냥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서 한 사람은 흔들리고, 한 사람은 몇 번이고 그를 버텨내야 하는 그 풍경을. 나는 잘 사과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자기의 아픈 과거를 딛고 나아가는 척 하는 제스쳐를 고모는 즐긴다. 사과하는 자신에게 취해서 아픈 할머니를 붙잡고 술주정을 한다. 나는 고백의 쓸모를 믿지 않는다.

나는 고백하지 않고 고통의 시간을 지난다. 뜨개질에는 ‘빼뜨기'라는 단계가 있다. 뜨다가 마무리해야 하는 코에 다다르면 빼뜨기를 한다. 어느 한 코를 잡아서 다른 한 코에 쑤셔 넣고 빼낸다. 이 부분에서는 에지간한 실수가 나도 대충 봐줄만 하게 마무리가 된다. 전체 패턴이 이미 그려진 이후이기 때문에 들쭉날쭉 어지럽긴 해도 괜찮다. 나는 구멍이 숭숭 난 곳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빼뜬다.

고백하지 않고 지나가기. 말하지 않고 삼키기. 고통을 필연적으로 가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으니까. 고통의 이유나 종류나 발원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감각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냥, 지나가자. 그렇게 매듭을 짓고, 다시 순서대로 찾아오는 마음들. 그러면 다시 ‘그냥, 지나가자.’ 매 시간 반복 된다.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

고통을 필연적으로 가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으니까. 고통의 이유나 종류나 발원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감각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끝.

하마 글방에서 썼습니다. 8주 차 글감 ‘고백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