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스크롤

2023년 06월 30일

무한 스크롤을 꼭 써야 하나?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Daley Wilhelm이라는 UX디자이너의 글을 읽었다.

무한 스크롤이 생긴 건 2006년이다. 지금은 많은 소셜 미디어에서 너무 익숙하게 쓰고 있다. 2006년에야 생겼다니 새삼스럽고 좀 놀랍네. 일전에는 사용자가 페이지 넘버를 하나하나 눌러야 했다. 더 직관적인 방법은 없을까? Aza Raskin이라는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냈다. 끝없는 스크롤을 만들자. 엄지만 스르르 운동하면 새로운 콘텐츠가 로딩 되는 방식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좋은 방식이었다. 사용자들이 더 많은 콘텐츠를 쉽게 소비했다.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니 기업의 수익도 늘어났다. 그런데 과하게 좋았다. 사람들이 스크롤을 내리는 데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 충동에 뇌가 절여졌다. 아자 라스킨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서 “뇌가 충동을 따라 잡을 시간을 주지 않으면 계속 스크롤을 내리게 된다”고 말했다.

2019년에 아자 라스킨은 트윗을 하나 올렸다. “암 쏘 쏘리…”라고. 그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끼진 해로움을 용감하게 인정했다. 200,000분의 인생의 매일 무한 스크롤을 하느라 날아간다. 비즈니스에 좋은 발명이 인간을 위해 좋은 발명은 아니었다. 디자이너들, 사용자 경험 연구가들은 대체할 방식을 다시 연구했다.

우리는 시간 말고 또 무엇을 잃어버렸나. 사람들이 얼마나 콘텐츠에 머무는지. 얼마나 집중하는지. 이런 무형의 가치가 산업화 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많은 게 사라졌고... 뭐랄까.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다.

첫번째. 이야기의 공간감. ‘다큐의 기술’이란 책을 읽었는데 “이야기의 공간감을 만든다”는 표현이 있었다. 이야기는 공간이다. 이야기 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운신할 폭을 그 안에 마련한다. 납작하게 가두는 이야기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할 여백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런 욕망이 열심히 활개칠 판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이야기라는 공간 자체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설계한 메시지를 끝까지 보여줄 기회를 얻기 어렵다. 수동적인 메시지를 견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인데, 사람들은 ‘언제든 빠져나간다’. 이런 종류의 압력에 대한 사람들의 민감도가 달라졌달까. 그래서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들도 ‘언제든 빠져나가겠지’라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내 말을 언제든 그만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전제로 소통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이 귀해졌다.

여튼.. 첫번째라고 붙였는데 첫번째에서 일단 끝.

Daley Wilhelm의 How (and should?) we stop the infinite scroll을 읽고.